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눈을 뜬 존재는 ‘나’인지, 아니면 ‘또 다른 나’인지 확신할 수 없다. 차가운 금속 캡슐이 열리는 순간, 내 앞에는 ‘미키 18’이 서 있다. 그는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고, 나는 그를 보며 머릿속이 하얘진다. 우리는 같은 존재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인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미키 17'은 이 불편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2025년 2월 28일, 봉준호 감독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엔 SF다. 원작은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 그리고 그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미키 17'이라는 제목이 탄생했다. 이미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되며 주목을 받은 작품. 봉준호가 창조한 우주 속에서, 로버트 패틴슨은 미키로 살아간다. 살아가고, 죽고, 다시 태어나며 말이다.
영화의 설정은 간단하다. 인류는 새로운 행성을 개척 중이며, 탐사대에는 한 명의 ‘소모품’이 있다. 그는 위험한 일을 대신 맡고, 죽으면 새롭게 복제되어 다시 깨어난다. 미키 17, 그 이전에도 16명의 미키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다. 미키 17이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만들어지고,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하게 된다. 그 순간부터 영화는 봉준호 특유의 불안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키 17’은 봉준호 감독의 색이 가장 옅은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전작들처럼 초반부의 질주와 후반부의 반전이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 대신, SF 장르의 특성을 극대화하며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광활한 우주, 그리고 미키들이 직면한 윤리적 질문은 이전 봉준호 영화와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비주얼은 대단하다. 우주 생명체 ‘크리퍼’와의 조우 장면은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며, 액션 시퀀스는 긴박감 넘친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의 백미는 거대한 액션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블랙코미디적인 요소와 결합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봉준호는 이 영화에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절제 속에서 따뜻함이 배어 나온다. 비평가들은 ‘덜 날카롭지만, 더 광활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기존의 날 선 풍자 대신, 더 넓은 스펙트럼을 담아낸 셈이다.
어쩌면 '미키 17'은 봉준호 영화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가 창조한 이 우주는, 그의 영화 세계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를 암시하는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앞에 ‘또 다른 나’가 나타난다면, 나는 그 존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나는 과연 ‘진짜 나’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봉준호 #미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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