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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에 의해 만들어진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실험적인 형식의 1929년 다큐멘터리영화입니다.

 

오데사 등 소비에트 연방의 여러 도시에서 촬영하였습니다.

 

도시의 활기찬 일상, 영화가 만들어지는 방법, 기계의 눈으로 본 풍경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키노-아이’ (영화-눈)라는 지가 베르토프의 영화에 대한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카메라를든사나이 #지가베르토프 #영화 #키노아이 #192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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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1929년 스페인의 루이스 부뉴엘 감독이 만든 아방가르드 영화로, 여러가지 잔인한 장면들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준 작품입니다. 초현실주의 연출가 루이스 부뉴엘이 감독하고 살바도르 달리가 함께 작업했습니다.

안달루시아의 개(1929년), 루이스 부뉴엘|아방가르드영화


1920년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사회 전역에 팽배했던 허무주의와 냉소주의 속에서 기존의 관습과 합리주의, 문명화에 대한 경멸과 거부를 표현하는 아방가르드 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당시 나온 아방가르드 영화들은 필름에 곤충 표본, 모래, 돌, 꽃 같은 이물질을 붙여서 영사기로 돌리거나 필름을 날카로운 걸로 긁어서 관객에게 틀어주는 괴랄한 방식을 많이 사용했습니습니다.

[여담]

가톨릭 교회에서부터 제작비를 대준 사람들과 관객까지 영화를 보고 모두 큰 충격을 받고 감독에게 항의를 하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감독에 대한 살해 위협까지 했습니다. 이후 루이스 부뉴엘 감독은 외출할 때면 늘 권총을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또한 영화에 출연한 주연 배우 두 명 모두 자살했습니다. 한 명은 약물 과다복용으로, 다른 한 명은 분신자살했습니다.

[평가]

범인(凡人)의 입장에서 보기 상당히 힘든 작품입니다. 하지만 영화사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큰 영화입니다. 때문에 현대에 들어서는 상당히 고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아방가르드영화 #1929년영화 #1929년 #루이스부뉴엘 #안달루시아의개 #살바도르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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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의 수난(1928년)|칼테오도르 드레이어의 초고작

《잔 다르크의 수난》(La Passion de Jeanne d'Arc)은 1928년에 만들어진 프랑스의 무성영화이자 흑백영화입니다. 영화배우 마리아 팔코네티의 주연작입니다. 잔 다르크의 재판 기록을 토대로 제작된 영국에서 받은 재판 과정을 압축적으로 그린 영화입니다. 그녀가 받은 재판과 투옥, 고문, 사형을 다루고 있습니다.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최고작으로 꼽힙니다. 

#잔다르크의수난 #1928년영화 #칼테오도르드레이어 #잔다르크 #마리아팔코네티 #전기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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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1928년), 킹비더|무성영화의 걸작 중 한편

미국에서 제작된 킹 비더 감독의 1928년 드라마, 멜로/로맨스 영화입니다. 엘리노어 보드먼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어빙 탈버그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습니다. 예술적 영감이 넘치는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으로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만들어낸 무성영화의 걸작 중 한편입니다.

[시놉시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존은 성공을 꿈꾸며 뉴욕으로 간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그는 삭막한 대도시에서 그 존재조차 희미해져 가는 수많은 노동자들 중 한 명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존은 메리에게 반해 가정을 꾸리지만, 삶은 비극의 연속이다. 대공황기이자 유성영화가 도래하던 시기에 발표된 작품으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사는 주인공에게 닥친 비극을 통해 보통 사람들이 겪는 삶의 애환을 그린다. 


#킹비더 #엘리노어보드먼 #어빙탈버드 #1928년영화 #무성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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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에 개봉한 영화. 윌리엄 A. 웰먼 감독이 연출하였습니다.



클래러 보우, 헨리 B. 월설, 줄리어 스웨인 고든 등 출연했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최초의 작품상 수상작이며 2012년 제 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티스트>가 수상하기 이전까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유일한 무성영화 작품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두 비행사의 우정과 그 사이에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로맨스가 들어가 있는 작품입니다.

영화 자체는 지금으로 치면 <배달의 기수>와 같은 선전영화 느낌이 물씬 풍기고, 매우 단순한 서사 전개, 무성영화다운 과장된 연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를 앞서간 공중전 촬영에 있는데, 이는 실제 비행사이기도 했던 감독 웰먼이 진짜로 카메라를 비행기에 달아놓고 찍운 덕입니다. 

실제 영화를 보면 1920년대 영화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복엽기들의 전투씬이 사실적입니다. 여기서 부분적으로 컬러가 들어갔는데, 총을 쏠 때 불꽃이 튀는 장면에 들어간 주황색이 그것으로, 이는 Handschiegl color process라는 기술을 통해 부분적으로 색을 입힌 것ㅇ;ㅂㄴ;다. 이런 촬영으로 공학효과상도 수상했습니다.

덕분에 제작비도 엄청나 200만 달러나 들였습니다.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385만 달러 들이고 당시 미쳤다는 소리 듣었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돈을 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400만 달러 가량을 벌어들이며 기록적인 흥행에 성공했고, 현재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환산했을 때 역대 흥행작 100위 안에 듭니다.

#날개 #1927년영화 #아카데미작품상 #아카데미영화제 #1927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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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로폴리스(1927년)|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최초의 영상물

[소개]


프리츠 랑 감독이 독일 영화사 UFA에서 프리츠 랑의 부인 테아 폰 하르보우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영화화해 1927년에 개봉한 무성영화입니다. 테아 폰 하르보우는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각본도 직접 담당했습니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하나로, SF 영화의 시초 및 SF 디스토피아의 원형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미래 도시와 로봇, 노동과 사회에 대한 비전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공각기동대,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많은 SF 영화가 메트로폴리스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처음으로 등재된 영상물이기도 합니다.

메트로폴리스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들 중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로 널리 여겨지고 있습니다. 2012년 '사이트 앤 사운드'의 비평가 투표에서 35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로선 보기 어려운 암울한 미래를 담고 새로운 시각적 효과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영화를 훨씬 더 강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제작비는 가히 천문학적 수치인 약 510만 마르크였습니다. 그러나 흥행은 대실패해 전체 수익은 7만 5천 마르크에 그쳤습니다.

또한 지상의 부르주아들이 천국을 향유하는 모습과 지하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비참한 모습을 크게 대조시켜 암울한 미래를 더욱 부각시켰습니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작중 프레더가 한 노동자와 옷을 바꿔입어 하룻동안 노동 체험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10시간의 혹독한 노동을 마친 프레더가 아버지에게 이렇게 울부짖습니다.

"아버지, 10시간이 이렇게 괴로운 시간인줄 몰랐습니다."

또한 작 초반에 노동자 1명의 과로로 인한 조작 실수로 거대한 기계에 과부하가 걸려 많은 노동자들이 죽는 것을 본 프레더가 'MOLOCH!'이라고 외치며, 그의 환영에는 노동자들을 집어삼키는 몰록의 상이 보입니다. 몰록이나 골고타, 여주인공인 마리아 등 성경의 요소들을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입니다. 

주인공 프레더의 아버지는 요 프레데센인데, 프레데센은 프레더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저 프레데센을 여호와가 모티브인 캐릭터로 보는 평들이 적잖이 있기 때문에, 프레데센과 프레더, 마리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리츠 랑은 1924년에 니벨룽의 노래를 홍보하러 뉴욕에 갔는데, 여기서 마천루들의 풍경에 큰 감명을 받아 메트로폴리스의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기에 메트로폴리스에서 거대한 마천루가 즐비한 풍경이 비중있게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뉴욕의 모방을 넘어 미래의 비전도 보여주었습니다. 프리츠 랑이 방문했던 당대에 뉴욕의 최고층 빌딩은 아직 전근대적인 양식을 못 벗어난, 신 고딕 양식을 차용한 울워스 빌딩이었습니다. 장식이 많이 달린 높은 중세 성당 같은 이 건물과 달리 영화 속 도시 모습은 장식이 완전히 사라진, 현대적인 느낌의 모더니즘 양식의 고층빌딩들이 즐비합니다.

 메트로폴리스가 제작되던 시기는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들의 결과물이 막 탄생하던 시점이었지만, 현대적 느낌의 고층빌딩은 아직 그림이나 계획안으로만 제시가 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나마 현대적 느낌에 가까운 고층빌딩의 초기 사례라고 볼 수 있는 Daily News Building도 1930년에서야 뉴욕에서 건설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보다 앞서 현대적 양식이 주류가 된 도시 풍경을 그린 메트로폴리스의 건축적 비전은 예언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수 많은 자동차가 고가 도로를 달리는 모습 등도 인상적입니다. 물론 이것도 프리츠 랑의 독자적인 발상은 아니었으며, 이미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은 현대적 도시의 중요 기능으로 효율적인 교통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비전을 메트로폴리스만큼 생생하게 보여준 것은 이 영화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메트로폴리스 #영화 #1927년 #1927년영화 #SF영화 #독일영화 #소설원작영화 #무성영화 #디스토피아 #사이버펑크 #파라마운트픽처스 #세계기록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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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 키튼의 1926년 액션 코미디 영화입니다. 버스터 키튼이 생전 가장 좋아하고 아꼈던 영화였습니다.


남북전쟁 때 실제 있었던 기관차 추격전(Great Locomotive Chase)을 코미디로 각색한 영화입니다.

제너럴(1926년)|버스터 키튼의 대표작이자 코미디 영화의 걸작


제너럴은 셜록 주니어 와 함께 버스터 키튼의 최고작이자, 역사상 최고의 코미디 영화 로 평가받는 걸작입니다. 1927년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와 서스펜스, 스턴트와 특수 효과 등이 무척 뛰어나서 오늘날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평가와는 정반대로, 당시에는 75만 달러라는 블록버스터급으로 제작비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15만 달러로 실패했고 호평 또한 받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버스터 키튼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버스터키튼 #액션코미디 #액션영화 #코미디영화 #1926년영화 #1926년 #제너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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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ld Rush

황금광시대(1925년), 찰리채플린|채플린 최고의 작품 중 하나



1925년 6월 26일에 개봉한 코미디 무성영화. 찰리 채플린이 기획, 각본, 제작, 주연을 담당했습니다. 채플린 본인은 페르소나에 해당하는 떠돌이(Little Tramp) 캐릭터로, 그리고 조지아 헤일, 맥 스웨인, 톰 머레이, 헨리 버그만, 말콤 웨이트 등이 출연했습니다.

채플린은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당시의 사진과 시에라 네바다에서 눈에 갇혀 식인을 벌이거나 가죽 신발을 뜯어먹었다는 일화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비극과 희극은 그리 멀지 않다고 믿은 채플린은 이런 빈곤과 공포의 이야기를 희극으로 조화시키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찬사를 얻었으며, 현재까지도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와 함께 채플린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채플린 본인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았습니다. 92만 달러로 만들어 북미에서 250만 달러. 해외 400만 달러를 벌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유성영화의 도래 이후, 1942년에는 찰리 채플린 스스로 음악과 효과음, 나레이션을 붙인 버전을 다시 개봉했으며, 이 판본은 음악 부문과 녹음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1992년에는 미 의회 도서관에 의해 미국 국립 영화 등록부에 보존된 영화로 선정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1990년 2월 17일에야 개봉했습니다.

영화 중간에 나오는 구두를 삶아 먹는 장면은 상당히 유명합니다.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를 창립한 영화계 동료이자 예전부터 절친이었던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아이디어를 제공할 겸해서 서부개척시대에 관한 슬라이드(일종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줬는데, 채플린은 이걸 보다가 '개척자들 중에 너무 굶주린 나머지 이것저것 주워먹다 못해 사람까지 먹었다'는 기록을 봤다며 그 때부터 순식간에 줄거리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물론 진짜로 사람을 먹는 이야기를 넣은 것은 아니고, '엄청나게 황당한 상황이라면 웃어서라도 넘기거나 미치는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원초적인 웃음을 추구한 것입니다.

채플린은 그렇게 '배가 너무 고파서 구두를 삶아먹고, 구두끈을 스파게티처럼 먹는다'는 명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 소품으로 쓰인 신발은 진짜 가죽이 아닌 감초를 이용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 장면을 찍고 나서 찰리 채플린과 같이 신발을 먹은 맥 스웨인(1876~1935)은 며칠 동안 설사로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1925년영화 #미국영화 #퍼블릭도메인 #찰리채플린 #황금광시대 #골드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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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템킨 사건을 소재로 1925년에 소련의 영화 감독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감독이 만든 러시아 영화입니다. 몽타주 기법과 시퀀스 기법 등 현대 영화의 기초를 쌓은 작품입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며 그중에서도 시민 케인, 게임의 규칙 등과 함께 독보적 위치에 있는 영화입니다. 다만 당시 소련에서는 미국 영화 로빈 훗에 밀려서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관객이 7만 명 정도에 그친 흥행실패작이었습니다.

혁신적인 기법 덕택에 후의 소련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영화계에서 재평가되었고, 이후로 제작기법을 참고할 때 쓰이는 교본용 영화로는 많이 사용됩니다.


이 영화는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몽타주 기법이 여지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예이젠시테인은 롱테이크가 아닌 짧은 컷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서 포템킨 함 수병들의 저항, 오데사 시민들의 시위, 시민에 대한 러시아 육군들의 학살 등의 역동적 장면들을 긴장감과 스릴이 있게 표현하였습니다.

#1925년 #전함포테킨 #세르게이예인스테인 #실화영화 #영화 #러시아영화 #1925년영화 #역사영화 #드라마영화 #퍼블릭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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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주니어(1924년), 버스터키튼|역대 최고의 코미디 영화



제너럴과 함께 버스터 키튼 최고의 걸작이자 역대 최고의 코미디 영화에 반드시 언급되는 걸작입니다. 웬만한 영화 리스트 Top 100에 빠지지 않고 코미디 영화 100선에서도 20위 안에는 반드시 들어가는 불세출의 명작입니다.

원래 키튼은 공동 감독으로 1910년대 최고의 코미디언이었던 로스코 아버클(Roscoe Arbuckle)을 고용했습니다. 당시 아버클은 당시 엄청난 금액이었던 70만 달러라는 빚을 지게 되어 William Goodrich라는 가명으로 촬영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아버클이 화를 내고, 배우들에게 짜증을 내는 등 일종의 갑질을 행하자 키튼은 그와 작업하는 것이 힘들다고 판단했고, 결국 단독 감독으로 촬영을 마무리 했습니다.

셜록 주니어 촬영 당시 키튼은 촬영을 하다 죽을 뻔 했습니다. 키튼이 움직이는 박스카 트레인을 걷다가 물웅덩이를 잡는 장면에서 예상보다 물이 빨리 들어와 키튼을 덮쳤습니다. 그 순간, 키튼의 목이 바닥의 강철 레일에 부딪쳐 키튼은 기절했고, 그 날 촬영은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촬영으로 인해 제대로 된 검사를 받지 못했고, 1935년이 되어서야 목 뒤에 굳은 살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셜록이 사랑한 여자의 아버지 역을 맡은 사람은 조 키튼(Joe Keaton)으로 버스터 키튼의 아버지입니다.

현재의 평가와는 달리, 이 영화는 당시 키튼의 첫 번째 흥행 실패작이었습니다.

#1924년영화 #코미디영화 #미국영화 #무성영화 #퍼블리도메인 #셜록주니어 #버스터키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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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의 1921년 코미디 무성 영화. 코미디 장르이지만 희극과 비극을 섞은 당시로서는 참신한 구성으로, 찰리 채플린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작품도 크게 히트했습니다.



존 레슬리 쿠건(일명 재키 쿠건, 1914~1984)이라는 7살짜리 아역 배우를 공동 주연으로 발탁한 영화입니다. 아역 배우의 아버지도 배우인 동명인 재키 쿠건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찰리 채플린은 재키 쿠건을 첫눈에 보자마자 재능을 알아보고 영화에 계약하려고 했으나, "재키 쿠건은 이미 다른 극장과 계약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 낙심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계약한 쪽은 사실 아버지 쪽이었습니다. 

결국 꼬마 재키 쿠건은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고, 영화는 크게 히트했으며 많은 미국인들이 영화 속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찬사와 호감을 보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재키의 아우 로버트 쿠건(1924~1978)도 아역배우였으나 형과 달리 유명하지는 않았습니다.이후에도 영화에 조연으로 나왔으나 1962년을 마지막으로 배우를 그만두고 일반인의 삶을 사랐습니다.

그러나 쿠건의 몫으로 돌아간 막대한 영화 출연료는 친부가 1935년에 48세로 교통사고로 사망 이후 재혼한 어머니 릴리언 쿠건과 계부 아서 번스타인이 흥청망청 전부 날려먹었습니다. 성인이 된 쿠건은 1935년 소송을 제기했고, 1939년에 승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탕진한 상태라 많이 받진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채플린에게 금전적 지원을 요청했는데 채플린으로써는 드물게 1천 달러라는 거금을 즉각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채플린은 고생을 해서 돈 문제에 구두쇠 같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채플린도 쿠건이 고생하는 모습이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 딱했던 모양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그렇긴 해도 재키 쿠건이 이들 부모에게 돌려받은 돈은 25만 달러나 되었습니다. 1939년 당시 미국 중산층 15년 이상 평균 수익인 거금입니다. 쿠건도 이 돈을 저축하면서 죽을때까지 잘 관리하였고 경제적으로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쿠건은 이후로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기술을 배웠고 2차 대전에 참전하여 동남아 전선에 수송기를 몰며 활약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영화보단 연극배우나 TV드라마 배우로 활동했으며, 1960년대 TV 시트콤 주연으로 다시 명성을 얻었습니다. 성인 배역으로는 아담스 패밀리의 페스터 친삼촌이 가장 유명합니다.

참고로 어머니 릴리언 쿠건은 비참하게 살았는데, 재혼한 남편 아서 번스타인이 1947년 병으로 죽고, 두 아들과 절연하면서 스스로 온갖 일들을 하면서 살다가 1977년 85살 장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일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미국에서는 미성년자가 벌어들인 수익은 부모 혹은 후견인이 100% 관리할 수 없고 15%를 무조건 미성년자 본인 앞으로 적립해야 하는 법이 생겼습니다. 일명 "쿠건 법"의 유래.

 



[100주년 개봉판과 4K 리마스터링판]

100주년 개봉판은 4K 리마스터링 이전에 나온 옛 리마스터링이라 화질이 다소 떨어지는 편입니다. 4K 리마스터링판은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으로 공개되었습니다.

1921년 개봉작이기 때문에 2021년 꼭 100주년이 된 저작권이 만료된 작품으로, 유튜브에 찾아보면 나옵니다. 참고로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버전은 음악이 덧입혀져 있는데, 찰리 채플린이 작곡한 것입니다. 

노년의 찰리 채플린은 키드뿐만 아니라 황금광 시대 같은 자신의 무성 영화에 음악을 덧입히는 작업을 직접 진행했습니다. 따라서 이 영화에 나오는 자막과 음향은 1972년에 한 번 리마스터링된 버전입니다.

한국에서는 1989년에서야 채플린 영화 제재가 풀리면서 우진필림에서 수입해서 개봉할때, 개봉했지만 서울 관객 1만 5천명 정도로 실패했습니다. 상영 시간이 50분 정도로 짧다보니, 이 영화와 채플린의 다른 무성영화 단편을 같이 묶어 90분 가까운 시간으로 상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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